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정왕후 조씨 (문단 편집) === 왕세자빈 === 풍은부원군 [[조만영]]과 덕안부부인 [[은진 송씨|송씨]][* [[송준길]]의 6대손이다. [[송준길]]의 외손녀가 그 유명한 '''[[인현왕후]]'''며, 증손녀사위 김제겸의 후손들이 그 유명한 '''[[순원왕후]]''', '''[[효현왕후]]''', '''[[철인왕후]]'''다.]의 장녀로 태어나서 [[1819년]](순조 19년) 10월 11일에 [[세자빈|왕세자빈]]이 되었다.[* 이때 제작된 《효명세자빈 책봉 죽책》은 [[강화도]] [[외규장각]]에 보관되어 있다가 [[1866년]](고종 3년) [[병인양요]] 때 [[프랑스]]로 무단 반출되었다.] >'''숭정전에서 왕세자빈의 책빈례를 행하다''' >---- >숭정전(崇政殿)에 나아가 왕세자빈의 책빈례(冊嬪禮)를 행하였다. >교명문(敎命文)[* 왕비(王妃)·빈(嬪) 또는 세자(世子)를 책봉할 때 훈유(訓諭)하는 글. 즉 [[세자빈]]을 책봉할 때 [[순조]]의 하교를 말함.]에 이르기를, >>"[[순조|임금]]은 말한다. [[조선/왕사|정체]](正體)를 계승하여 [[왕세자|대본]](大本)으로 삼았으니 나라에서 세자보다 높은 경우가 없고, >>세자를 짝지을 적엔 반드시 나라의 아리따운 아가씨를 기다리니 예(禮)는 육빙(六聘, 육례를 갖춘 빙례)보다 도타운 것이 없다. >>하늘이 지은 배필이요, 땅의 도리는 끝맺음이 있다. 생각건대, 세자의 현명함은 온 백성의 소망이 매여 있다. >>나이를 따져 차례로 삼는 것을 배워 삼가례(三加禮)를 다하니 만방의 정숙(貞淑)으로 밝게 들리고, 세자를 가군(家君)으로 하여 >>그 법을 살피니 좋은 배필로 1백 채의 수레로 맞이함이 마땅하다. 곤위(坤位)로서의 상(象)이 없었으면, 어찌 세자의 짝이 되겠는가? >>아! '''[[풍양 조씨|조씨]](趙氏)'''는 대대로 벼슬한 집안이요, 해맑은 좋은 자질이다. 길한 경사와 상선(祥善)이 선대에 쌓여 그 몸에 모였으며, >>정정(貞靜)과 화유(和柔)는 천성으로 타고나서 얼굴에 드러났다. 얌전하고 아름다움을 점쳐 협화(協和)하였으니, >>경사(卿士)들에게 상의하여 어김이 없었노라. 백복(百福)의 근원을 열었고, 이성(二姓)이 화호(和好)를 돈독히 하였다. >>(중략) >>여염 백성들의 은미함을 살펴서 서로 사랑함이 마땅하다. 더구나 [[종묘]]의 신령을 이음에 감히 공승(共承)을 소홀히 하겠는가? >>아! [[효명세자|남편]]에 대한 공경은 효경(孝敬)에 근본하여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며, 명성과 복록을 얻어 창성하기에 한정이 없을 것이다. >>그러므로 이에 교시(敎示)하니, 마땅히 상세히 알아야 할 것이다." >하였다. >---- >- '''《[[순조실록]]》 22권, 순조 19년([[1819년]], 청 가경(嘉慶) 24년) 10월 11일 (경자) 1번째기사''' [[1827년]](순조 27년) 7월 18일, [[효명세자]]의 아들이자 [[순조]]의 유일한 손자인 원손([[헌종(조선)|헌종]])을 낳았다. >'''세자빈이 원손을 낳았다 대신들이 하례 하다''' >---- >세자빈이 '''[[헌종(조선)|원손]](元孫)'''을 낳았다. 하교하기를, >>"오늘 신시(申時, 오후 3시~5시)에 세자빈이 원손을 낳았으니, 모든 행사는 관례대로 거행하라." >하고, 시임 대신과 원임 대신, 대각의 신하, 약원의 세 제조를 함인정(涵仁亭)에서 불러 보았다. >영중추부사 '''한용귀(韓用龜)''' 등이 아뢰기를, >>"[[조선/왕사|하늘과 조종들]]께서 묵묵히 도우시어 빈궁께서 원손을 순산하셨으니, >>이는 실로 억만 년 [[종묘]] [[사직]]의 무궁한 기쁨입니다. 처음으로 손자를 보시는 경사를 맞았으니, >>전하의 마음이 더욱 기쁘시겠습니다만 신(臣)들도 즐거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." >하였다. >---- >- '''《[[순조실록]]》 29권, 순조 27년([[1827년]], 청 도광(道光) 7년) 7월 18일 (신유) 2번째기사''' 하지만 [[1830년]](순조 30년)에 남편 [[효명세자]]가 [[대리청정]]을 하던 중 22살의 이른 나이에 [[요절]]하고, 같은해 9월, 아들 [[헌종(조선)|헌종]]이 [[왕세손]]에 책봉되었다. 그러나 4년 후 시아버지 [[순조]]도 [[죽음|승하]]함에 따라, 고작 8세 밖에 안 된 어린 아들 [[헌종(조선)|헌종]]이 [[조선/왕사|왕위]]에 오른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